[딥 포커스] 이 시대 아이돌 키운 ‘서태지 DNA’
‘서태지소년단’ 나오기까지… 아이돌 25년
가수 서태지와 인기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노래 ‘컴백홈’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닮은 음악… 세기 뛰어 넘은 저항 아이돌의 만남
“아버지!” 지난달 2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진이 가수 서태지를 껴안고 한 인사다. 나흘 뒤 열릴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전 리허설 자리였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같은 달 초 서초동 서태지컴퍼니에서 처음 만났다. 서태지 측에 따르면 서태지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먼저 ‘아빠라고 불러’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까마득한 후배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던진 ‘아재개그’였다. 방탄소년단의 막내 정국의 나이가 올해 스물. 서태지가 마흔다섯이니 터무니 없는 말장난만도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는 ‘원조 아이돌’과 ‘요즘 아이돌’이라니.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랩과 춤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연을 준비했다. 한 달여가 흘러 2일 잠실동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회오리춤’(노래 ‘난 알아요’의 춤)을 추며 세대를 뛰어넘었다. ‘하여가’ 등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8곡을 함께 불렀다. 잠실엔 3만 5,000여 관객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서태지는 방탄소년단에게 먼저 합동 무대를 제안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방향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닮았다는 판단에서였다. 방탄소년단은 노래 ‘노 모어 드림’과 ‘N.O’에서 획일화된 교육과 천편일률적인 꿈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21세기 저항의 아이돌인 방탄소년단과 20세기 혁명의 아이콘인 서태지는 함께 “이제 그만 됐어!”(‘교실이데아’)를 외쳤다.
“이젠 너희들의 시대야.” 서태지는 방탄소년단과 새로 결성한 팀을 “서태지와 아들들”이라 부르며 후배의 미래를 응원했다.
서태지->지드래곤->랩몬스터… 시대의 아이돌 특징
서태지의 25년은 아이돌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 아이돌 그룹 전성 시대를 열었다. 지금 아이돌 K팝의 근간인 랩과 노래, 군무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서 비롯됐다. 서태지는 팀 데뷔곡 ‘난 알아요’에서 랩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랑 얘기 일변도였던 댄스 음악에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교실이데아’)과 통일(‘발해를 꿈꾸며’)에 대한 굵직한 사회적 서사를 담아 대중적인 폭발력을 높인 것도 파격이었다. 앨범 작업을 위한 잠정 활동 중단도 그가 남긴 ‘유산’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받는 창작 아이돌의 유형도 변했다. 1990년대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빅뱅의 시대였다. 리더인 지드래곤은 아이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서태지와 비슷한 듯 달랐다. 직접 곡을 쓰는 ‘창작형 아이돌’이란 점은 같았지만, 음악은 더 자유분방했다. 그의 언어는 유희적이었다. 지드래곤은 사랑을 “찹쌀떡”(‘배배’)에 노골적으로 비유했고, “뭐만 했다 하면 난리라니까”(‘원 오브 카인드’)라며 자기 자랑을 주저하지 않는다. “스왜그(Swagㆍ뻐김) 문화의 아이콘이다.”(김난도 서울대 교수) 서태지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비슷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자신을 자랑한다는 점에선 결이 사뭇 다르다. 진지함에서 벗어나 가볍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문화적 흐름에서 환호 받을 수 있는 모습이다.
2013년 데뷔한 요즘 대세 그룹 방탄소년단도 선배인 빅뱅과의 행보가 확연히 다르다. 방탄소년단은 빅뱅의 음악보다 무겁고, 진지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창작(앨범 ‘윙스’)을 해 청춘의 성장통을 치열(‘피땀눈물’)하게 고민한다. 노래 ‘봄날’ 뮤직비디오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이 담긴 노란색 리본도 여럿 등장한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거리를 두는 것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수저계급론’에 빠진 청춘들의 시대적 절망과 맞닿아”(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 더 큰 공감을 얻는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리더이자 래퍼인 랩몬스터가 프로듀싱을 총괄한다. 그는 데뷔 전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 크루(대남조선힙합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자기만의 음악색을 만들어갔다.
소비자가 제작하는 ‘아이돌 3.0시대’의 아이돌은…
가요계는 ‘아이돌 3.0 시대’를 맞았다. 아이돌 권력이 창작자(서태지)에서 기획사(빅뱅, 방탄소년단)를 거쳐 소비자로 옮겨지고 있다. 시청자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뽑은 아이돌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이 인기다. 이런 환경에선 서태지와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이 나올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진 않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아이돌만 제작되다 보니 아티스트형 아이돌은 멸종 단계”라며 “창의적 실험을 선보이는 아이돌이 나오긴 어려운 환경이 됐다.”(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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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서태지와 인기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노래 ‘컴백홈’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닮은 음악… 세기 뛰어 넘은 저항 아이돌의 만남
“아버지!” 지난달 2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진이 가수 서태지를 껴안고 한 인사다. 나흘 뒤 열릴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전 리허설 자리였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같은 달 초 서초동 서태지컴퍼니에서 처음 만났다. 서태지 측에 따르면 서태지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먼저 ‘아빠라고 불러’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까마득한 후배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던진 ‘아재개그’였다. 방탄소년단의 막내 정국의 나이가 올해 스물. 서태지가 마흔다섯이니 터무니 없는 말장난만도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는 ‘원조 아이돌’과 ‘요즘 아이돌’이라니.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랩과 춤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연을 준비했다. 한 달여가 흘러 2일 잠실동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은 ‘회오리춤’(노래 ‘난 알아요’의 춤)을 추며 세대를 뛰어넘었다. ‘하여가’ 등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8곡을 함께 불렀다. 잠실엔 3만 5,000여 관객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서태지는 방탄소년단에게 먼저 합동 무대를 제안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방향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닮았다는 판단에서였다. 방탄소년단은 노래 ‘노 모어 드림’과 ‘N.O’에서 획일화된 교육과 천편일률적인 꿈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21세기 저항의 아이돌인 방탄소년단과 20세기 혁명의 아이콘인 서태지는 함께 “이제 그만 됐어!”(‘교실이데아’)를 외쳤다.
“이젠 너희들의 시대야.” 서태지는 방탄소년단과 새로 결성한 팀을 “서태지와 아들들”이라 부르며 후배의 미래를 응원했다.
서태지->지드래곤->랩몬스터… 시대의 아이돌 특징
서태지의 25년은 아이돌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 아이돌 그룹 전성 시대를 열었다. 지금 아이돌 K팝의 근간인 랩과 노래, 군무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서 비롯됐다. 서태지는 팀 데뷔곡 ‘난 알아요’에서 랩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랑 얘기 일변도였던 댄스 음악에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교실이데아’)과 통일(‘발해를 꿈꾸며’)에 대한 굵직한 사회적 서사를 담아 대중적인 폭발력을 높인 것도 파격이었다. 앨범 작업을 위한 잠정 활동 중단도 그가 남긴 ‘유산’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받는 창작 아이돌의 유형도 변했다. 1990년대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빅뱅의 시대였다. 리더인 지드래곤은 아이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서태지와 비슷한 듯 달랐다. 직접 곡을 쓰는 ‘창작형 아이돌’이란 점은 같았지만, 음악은 더 자유분방했다. 그의 언어는 유희적이었다. 지드래곤은 사랑을 “찹쌀떡”(‘배배’)에 노골적으로 비유했고, “뭐만 했다 하면 난리라니까”(‘원 오브 카인드’)라며 자기 자랑을 주저하지 않는다. “스왜그(Swagㆍ뻐김) 문화의 아이콘이다.”(김난도 서울대 교수) 서태지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비슷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자신을 자랑한다는 점에선 결이 사뭇 다르다. 진지함에서 벗어나 가볍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문화적 흐름에서 환호 받을 수 있는 모습이다.
2013년 데뷔한 요즘 대세 그룹 방탄소년단도 선배인 빅뱅과의 행보가 확연히 다르다. 방탄소년단은 빅뱅의 음악보다 무겁고, 진지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창작(앨범 ‘윙스’)을 해 청춘의 성장통을 치열(‘피땀눈물’)하게 고민한다. 노래 ‘봄날’ 뮤직비디오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이 담긴 노란색 리본도 여럿 등장한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거리를 두는 것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수저계급론’에 빠진 청춘들의 시대적 절망과 맞닿아”(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 더 큰 공감을 얻는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리더이자 래퍼인 랩몬스터가 프로듀싱을 총괄한다. 그는 데뷔 전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 크루(대남조선힙합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자기만의 음악색을 만들어갔다.
소비자가 제작하는 ‘아이돌 3.0시대’의 아이돌은…
가요계는 ‘아이돌 3.0 시대’를 맞았다. 아이돌 권력이 창작자(서태지)에서 기획사(빅뱅, 방탄소년단)를 거쳐 소비자로 옮겨지고 있다. 시청자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뽑은 아이돌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이 인기다. 이런 환경에선 서태지와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이 나올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진 않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아이돌만 제작되다 보니 아티스트형 아이돌은 멸종 단계”라며 “창의적 실험을 선보이는 아이돌이 나오긴 어려운 환경이 됐다.”(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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