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용·곽경택 감독, 2001 '조폭' '엽기' 코드로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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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현풍 곽씨 맞죠." 곽재용(43)감독이 운을 떼자 곽경택(36)감독이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서로 "축하합니다"라며 반갑게 악수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오랫 동안 알고 지낸 것 같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얼굴을 맞댔다. 올 한국영화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조폭'과 '엽기'란 흥행코드를 발굴하며 각각 8백만, 5백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엽기적인 그녀'를 찍으면서 '친구'의 반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랬어요. 한번은 '친구'를 보고온 전지현이 "내가 니 시다바린가"를 해보라고 해 응했더니 "곽재용이, 너 많이 컸다"고 대꾸해 웃음바다가 됐지요." (곽재용)

곽경택 감독이 배꼽을 잡으며 "전지현.차태현 모두 연기를 참 잘했어요. 꼭 한번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들이죠. '엽기적인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고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답례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올 한해를 돌아보는 쪽으로 흘렀다. 아무래도 조폭 얘기가 먼저 나왔다. 조폭영화의 '원조'격인 '친구'를 연출한 곽경택 감독의 심정이 궁금했다.

"'친구'나 '신라의 달밤''조폭마누라''달마야 놀자'등의 후속작들은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겁니다. '친구'의 히트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지난해 공포영화, 상반기 멜로영화에 이어 전체 흐름이 달라진 것뿐이죠. 또 각기 색깔이 다르지 않습니까.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곽재용 감독이 거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조폭마누라'의 흥행을 보고 '혀를 깨물고 죽자'라고 했다지요.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관객들이 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는가를 따져보지 않고 말입니다. 사실 '엽기적인 그녀'나 '조폭마누라'는 지배하는 남성, 억압받는 여성이란 고정관념을 뒤집지 않았습니까."

곽재용 감독이 농담을 던졌다. '친구'의 폭력성을 강하게 비판했던 강신성일 의원이 '엽기적인 그녀'를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별다른 낙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어디 하나 만족스러운 곳이 없어 영화에 몰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겠지요. '친구'는 어디까지나 '조직'의 형식을 빌린 휴먼 드라마라 억울한 점도 있지만요."(곽경택)

그러자 곽재용 감독은 "검열이 완화된 탓도 있어요. 예전보다 훨씬 리얼하게 촬영할 수 있어 한국영화의 힘이 몰라 보게 강해졌어요. 관객들도 이런 점에 끌렸을 겁니다"라고 진단했다.

한국영화 열기가 얼마나 계속될지,또 우리 영화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의견을 구했다.

"지금은 정말 놓쳐선 안될 호기입니다. 다만 한 장르, 한 소재가 잘된다고 따라가선 문제가 있지요. 무엇보다 상업영화의 성공 노하우를 축적해야 합니다. 일종의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지금은 투자.제작자들이 스타 캐스팅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거든요. 시나리오부터 제작.유통.마케팅까지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 분석이 필요합니다,"(곽재용)

"한국영화의 붐을 타고 고급인력들이 영화계로 많이 진출해 희망적입니다. 다만 미국처럼 대기업들이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젊은 영화인을 적극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장편 상업영화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실험정신을 북돋았으면 합니다. 그게 바로 영화계의 기초가 아닐까요."(곽경택)

갈수록 세력이 커지는 기획영화 앞에서 감독들의 입지가 오히려 좁아지는 것은 아닌지 되물었다. 영화란 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이라는 게 곽재용 감독의 대답이다. 감독은 이들의 소리를 고르게 하는 조율사라는 것.

곽경택 감독도 많은 사람의 여과과정을 통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사실이라고 화답했다. 그렇다고 영화의 주인인 감독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이제서야 한국 감독들도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2002년에 대한 도전도 시작됐다.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영화사를 차리고 이번주 말 비운의 복서였던 고(故) 김득구의 삶을 그릴 '챔피언'의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열일곱살 때부터 잊지 않았던 소재라고 했다.

곽재용 감독도 억대의 선금을 받고 향후 5년간 세 편을 만들기로 계약했다. 미래 배경의 SF멜로, 킬러가 나오는 액션 멜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예정이다.

곽경택 감독은 "나에게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는 김득구 선수의 메모로, 곽재용 감독은 "필모그래피(연출목록)사이의 시기는 감독에게 죽은 시기"라는 비장한 각오로 내년을 다짐했다.

글=박정호,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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