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수단체 ‘동성애 혐오’로 헤쳐모여

백철 기자
9월 23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부산퀴어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는 가운데 동성결혼 반대단체 회원들이 인간띠 잇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 23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부산퀴어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는 가운데 동성결혼 반대단체 회원들이 인간띠 잇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인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10월 11일 인권강연을 하기 위해 충청남도 당진시청으로 향했다. 강당으로 들어가려는 한 이사를 맞은 것은 성소수자 인권 반대단체들의 피켓이었다. 이들은 ‘남자가 여자 샤워실에 들어가도 막을 수 없다’, ‘불법 음란 행사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들은 시청 강당까지 따라와 피케팅을 계속했고 강연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한 이사는 “강연 전부터 계속 그분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연장 앞에 집회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강연장 안에까지 난입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당진지역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취지의 책도 내고 전국 교회에 강연을 다니시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파 단체 거리집회 한동안 잠잠

한 이사의 강연이 시작된 이후에도 반대단체 회원들은 “우리도 강연 들으러 왔다”며 강당에서 나가지 않았다. 한 이사에 따르면, 강연장 앞자리를 차지한 반대단체 회원들은 2시간 강연 중 30분 정도를 듣다가 갑자기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며 퇴장했다. 일부 회원들은 한 이사의 강연이 끝날 때까지 강연장을 지켰다.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단체의 두 축은 안보를 중시하는 아스팔트 극우파와 성소수자 반대를 내거는 기독교 극우파였다.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종북몰이’를 앞세운 아스팔트 극우파가 득세했지만, 정권교체 이후 아스팔트 극우파의 활동은 뚝 끊겼다. 반면 기독교 극우파의 ‘동성애 반대’ 목소리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10일, 동성애·동성혼 개헌반대 국민연합(동반연)은 국회와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성교육 표준안 개정을 반대한다는 취지였다. 성교육 표준안과 이를 활용한 교사용 지도서는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돌리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정현백 신임 여성부 장관도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성소수자 반대단체들은 충남 인권조례 등 전국 지자체에서 제정됐거나 제정 준비 중인 각종 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아스팔트 우파의 활동은 초라하다. 대표격인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은 대선이 치러진 5월 9일부터 10월 초까지 단 한 건의 집회신고도 하지 않았다. 아스팔트 우파의 정보제공 통로였던 미디어워치·프리덤뉴스를 각각 운영하던 변희재씨와 김기수씨는 현재 애국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구명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때부터 기독교 우파의 영향력은 강했다. 지난해 11월 6일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는 교인들이 박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서 탄핵이 벌어졌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이후 계속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뿌려진 가짜뉴스 신문의 절반 가까이에는 기독교 우파가 중시하는 인권조례 문제, 성소수자 반대 등의 내용이 함께 실렸다.

기독교 우파가 보수단체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핵심 이유로는 아스팔트 우파의 상대적 몰락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지난 3월 6일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여러 보수단체에게 68억원가량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최근 국정원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보수단체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아스팔트 우파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문재인 정부에 ‘종북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적극적 화해를 추구하거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북한도 워낙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현 정부를 종북이라고 공격해도 소용이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보수정치인들이 보수기독교를 의식한 듯한 활동을 하고, 보수기독교계도 자체적인 정치세력화를 준비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통해 자체 집결하는 게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이제 성소수자 혐오 이슈에 ‘아스팔트 우파’에 가까운 이들도 하나둘씩 가세했다. 9월 27일 동반연 창립총회에는 뉴라이트 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정수 애국단체총연합회 집행위원장, 이희범 애국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이 사무총장은 국회 개헌특위가 ‘성평등’을 헌법에 넣기로 하면서 보수단체가 ‘동성애 반대’로 뭉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20일,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헌법 36조 개정안에 ‘성평등’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재 헌법 36조 1항은 혼인에 관련한 부분이다. 현재는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라는 표현이 조항에 있다. 이 사무총장은 “수년 전부터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동성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분들이 안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헌법 개정안에 동성애 조항이 들어간다고 하니 국민들이 놀라서 전국적으로 (동반연이) 조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도 반대 대열에 동참

과거와 달리 국회의원들까지 성소수자 반대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동반연 창립총회에서 격려사를 했다. 전 의원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보수 싱크탱크인 자유경제원의 사무총장을 지낸 인사다. 전 의원은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군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여러 차례 했다.

심지어 인권위법에서 성소수자 부분을 삭제하자는 개정안까지 나왔다. 9월 19일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인권위법 개정안은 차별행위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개정안의 제안서에는 성소수자란 표현이 아예 없다. 대신 제안서는 ‘동성애(동성 성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해 성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김 의원의 제안서는 법원이 “동성애(동성 성행위)를 일반인에게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유발하고 선량한 성도덕 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행위로 평가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명숙 활동가는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법안 발의는 처음 본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혐오를 반대해야 할 국회나 인권위 등 국가시설에서 성소수자 혐오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해왔는데, 그런 게 쌓여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봤다.

인권운동가들은 지금의 성소수자 혐오가 과거 종북몰이와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뜻 자체에 부정적 의미가 들어간 ‘종북’이라는 단어로 프레임 전쟁을 했던 것처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점을 부추기는 프레임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종북몰이가 ‘종북주의가 확산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부추긴 것처럼 ‘동성애가 확산될 수 있다’며 혐오를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한채윤 이사는 “종북이란 말이 국가안보를 빙자해 인권을 탄압했듯, 지금도 ‘동성애 반대’를 빌미로 인권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 관련 조항이 없는 인권조례까지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성적으로 문란한 동성애가 확산된다’는 선전은 미끼일 뿐이고, 그들의 진짜 의도는 인권조례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홍수 피해로 진흙 퍼내는 아프간 주민들 총선 5단계 투표 진행중인 인도 대만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 라이시 대통령 무사 기원 기도
이라크 밀 수확 안개 자욱한 이란 헬기 추락 사고 현장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폭풍우가 휩쓸고 간 휴스턴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